민주는 오늘 따라 화장이 잘 받질 않는다고 생각했다.

시간도 별로 없는데 눈썹까지 맘에 들지 않게 그려지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.

결혼해서 이때 까지 변변한 화장품도 없이 살아 왔지만 오늘은 초등학교 졸업 이

후 처음 만나는 동창회 자리가 아니던가! 남들은 정말 잘 차려 입고 올텐데 혹시

자기가 유행에 너무 뒤처지진 않을 까 내심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. 에라 ~모

르겠다. 오늘 한 번  가보고 맘에 안들면 다신 가지 말아야지 내심 다짐하고 또

다짐했다.  버스를 타고 가 는 길에 화려한 네온싸인에 비춰진  유행 지난 옷을

보며 다시 망설여졌다. 지금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도 생각 했지만 동창생 녀석

의 끝없는  설득에 못이겨 가는 길이니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했다. 입구에서 친

구를 불러 겨우 들어선 자리에 아는 얼굴이라고는 한 명 밖에 없었다.

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름도 얼굴도 잘 생 각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.

앨범을 미리 보고 왔는데도 도통 모르겠다. 여자 동창 생들은 생각보다는 평범하

게 옷을 입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. 나만 너무 구식옷을 입었나 망설였는데 다행이

었다. 옛날에 키작고 못생긴 아이가 시집잘가고..누구는 장가가서 아직 아기가

없어 입양을 해야 하고... 누구는 잘 난 처가댁에 큰소리 한번 못지르고 기죽어

살고있다고 하소연 하는 것을 듣는 사이에, 뺀질한 얼굴에 금목걸이를 한 녀석

이  나에게 인사를 넙죽 건너는 것이 아닌가.! 누구더라

이름이 생각 날듯 말듯.... 아 김 준서 !그래 코흘리개, 말썽쟁이 그 녀석이다.

나랑 짝꿍도 했지만 늘 우린 싸우고 일년내내 원수처럼 지냈던 6학년 그 때 ...

아 ! 그런데 웬일로 나에게 인사를 다하네 . 그런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네 .

이젠 다 용서가 되어서 일까. ..다행이다 .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

했는데, 이왕이면 이제 모든 걸 용서해 주자 . 그래서 세월이 약이다라고

어른 들이 말씀 하셨나 보다..를 생각하는데

엉뚱한 소리를 한다. 내가 그 때 니 ~  왜 그래 괴롭혔는지 아냐? 내가 그것을 어떻

게 아냐고...! 니 속을... 그런데 이 녀석이 계속 혼자 지껄인다. 내가 니

좋아 했는데 참말로 몰랐나? 좋아하면 말로하지.왜 괴롭혔는데? 민주가 다그치자

준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다시 말을 한다. 여자가 왜 그리 눈치 코치가

없노! 아 그게 말이 되냐고! 매일 북한공산당보다 더 미워 했는데 무슨 눈치 코치~

정말 어이가 없다. 남자들은 정말 이해가 안간다. 좋아했으면 말을 하던지,..

아니면 적어도 원수처럼 대하지나 말던지...

 2차로 노래방을 따라갔지만 그 녀석 준서때문에 민주는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

았다. 이때까지 신랑말고는 남자라고는 몰랐는데 ,자꾸 눈이 마주치자 여러가지

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찰나..언제 옆에 왔던지 그 녀석이 옆에 착 달라 붙

어 머리를 자꾸 드미는 통에 기분이 묘했다. 이걸 그냥 쥐어박을까~ 모르는척

받아줄까 .아 ~ 내맘도 모르겠다. 술의 힘이 이렇게도 대단했던 것일까! 자꾸

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이다. 여자하고 접시는 밖으로 내~ 돌리면 안 된다 신랑

이 노래를 하던데, 다 이유가 있었구나 를 생각하고 있을 때, 블루스 타임이 되었

다. 준서가 민주의 손목을 잡고 다짜고짜 무대위로 끌고 나가자, 반작이는 불빛

보다 더 가슴에 불꽃이 이는 것만 같아 당황이 됐다. 거부하는 것도 남들 눈에

이상하고 ,친구들이 환호를 해 주는데,  이상하게 굴지말자 .정신없이 고개도 못

들고 춤을 추고 있는데 그 녀석이 ,살아가면서 내 생각을 많이 했다고,내가 첫사

랑이었노라고 ,고백을 했다. 놀래서 급하게 화장실 간다고 이야기하고 그 자리를

빠져 나와 물을 마시고 있는데 ,옛날 생각이 났다.

준서가 졸업식날 자기가 받은 꽃다발에서, 꽃 한송이를 주면서 장난처럼 말했다.

니~ 나중에 내 한테 시집 와라. 갈 때가 없으면 받아 주께~  그말이 진심으로

한 말이었구나 ..를 민주가 생각하고 있는데 ,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준서가 다가

왔다. 야~ 다 지나간 옛 이야긴데 뭐 그리 충격 받아가지고~ ....

준서의 태연하게 말하는 통에 민주도 안심이 된다. 세상사 복잡해지면 머리

아프고 단순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던 민주에게 고민꺼리가 해결 된 것이다.

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형 이라고 하니 다시 믿어 줄께 민주가 대답을 하니

준서도 괜히 자기의 심정을 이야기 했다가 서로가 불편해 졌다며, 앞으로는 그냥

친구로 잘 지내자고 한다. 그래 우리 사이에 뭐가 있었나.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.

12시가 넘어 겨우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문자가 왔다.

내 사랑 민주야 잘 살아라~ . 건강하고  행복해라 ... 준서가-

아니 이건 또 뭐야..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말인지 헷깔려하면서,

어쩌면 동창회에 두 번 다시 못 올 것 같다는 생각에 민주는 아련한 한숨을 쉰다.

오늘은 아주 행복한 꿈을 꾼거야. 그래 꿈은 깨어나면 다 잊어 버리지 .그래

그냥 꿈이니까 잊어버리자 .준서도 잊고.. 아니 어쩌면 민주도 조금은 좋아했

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. 내 보다 못한 혜진이에게 준서가 맛있는 것을 주면

질투가 나서 더  쌀쌀맞게 굴었으니 말이다. 차창 밖으로 11월의 차가운 밤 공기

가 가슴 속 까지 후벼들고 있음을 느끼고 ,민주는 오늘 하루가 참으로 길게 느껴

졌다. 하루가 아닌 몇 날 몇 년을 하루에 다 ~ 되새김질 했으니 말이다.